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마스크걸 메이킹 (3인1역, 안재홍, 다크스릴러)

by 초로미야 2026. 4. 30.

마스크걸
마스크걸

드라마에서 한 캐릭터를 세 배우가 나눠 맡는다는 발상, 과연 좋은 아이디어일까요? 메이킹 영상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캐릭터를 이어받고 또 넘겼는지를 알고 나니, 이 구조가 사실상 이 작품의 핵심 장치였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3인 1역 구조가 만들어낸 연기의 계보

마스크걸은 김모미라는 한 인물을 이한별, 나나, 고현정 세 배우가 시간 순서대로 연기하는 다층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평일 사흘에 걸쳐 7부작을 완주하면서 각 배우 전환 지점마다 일시정지하고 캐릭터 추적 메모를 남겼는데, 시청 후반부로 갈수록 이 방식이 단순한 시간 흐름 표현이 아니라 모미의 심리 상태 변화를 시각화하는 수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나에서 고현정으로 전환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울을 활용한 카메라 회전 방식을 검토했다고 하는데, 최종적으로는 줌인·줌아웃과 함께 색채 톤 자체가 전환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흑백으로 처리된 나나의 모미 시기는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를 상징하고, 고현정의 시기에는 다시 컬러가 돌아옵니다. 이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 즉 영상의 색감과 명도·채도를 후반 작업에서 조정하는 기술이 단순한 시각 효과를 넘어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설명하는 내러티브 도구로 쓰였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이 구조에 대한 시각은 엇갈립니다. 7부라는 짧은 분량 안에 3인 1역에 6개 시점, 14년 시간대를 모두 담으려다 보니 캐릭터의 동기 설명이 압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은 저도 인정합니다. 특히 안재홍 시점의 심리 변화는 좀 더 공간이 있었다면 더 입체적으로 표현됐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안재홍이 직접 만들어낸 주오남의 디테일

안재홍의 연기에 대해서는 "캐릭터에 잘 맞는다"는 반응이 많은데,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디테일의 상당 부분은 대본에 없던 것들입니다. 복도에서 이어폰을 꽂고 홀로 소심하게 흥얼거리며 추는 춤, 특별한 날 섹스돌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장면, 모미에게 사랑 고백을 상상할 때 "아이시테루"라고 속삭이는 즉흥 연기가 모두 그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메이킹 영상을 보면서 제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그가 현장에서 주변을 얼마나 '멍하게' 만들었는가입니다. 감독도 "세트에 있던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고 말했고, 이한별도 함께 연기하다가 "이게 말이 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상대 배우의 즉각적인 리액션을 이끌어내는 연기를 업계에서는 임프로브(improv) 연기라고 부릅니다. 임프로브란 사전 합의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반응하며 장면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상대의 연기를 '진짜 처음 보는 것처럼' 반응할 수 있어 장면에 생동감을 더합니다.

5화에서 절정을 이루는 광기 장면은 저도 두 번 연속으로 돌려봤습니다. 감독은 대본상 더 크게 소리치는 방향을 염두에 뒀지만, 현장에서 안재홍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짜내듯 표현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가 오히려 더 서늘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연기 연출에서 이런 접근법을 언더플레이(underplay)라고 합니다. 언더플레이란 감정을 과잉 표출하지 않고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 기법입니다. 그 신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스크와 세트, 비하인드에서 드러난 디테일

마스크걸이라는 제목의 상징인 마스크 소품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닙니다. 아트 디렉터는 나나의 실제 얼굴을 닮은 형태로 마스크를 제작하는 방향을 제안했고, 이한별이 실제 착용하는 과정에서 색감, 형태, 호흡 구멍 위치까지 수차례 수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스크 제작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부분은 촬영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이를 역으로 이용해 조명에 따라 마스크가 다른 감정을 발산하도록 설계했습니다.

교도소 세트 역시 실제 국내 교도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설계됐습니다. 라일락 계열의 파스텔 컬러를 전면에 활용하고, 우연히 촬영 장소 헌팅 중 발견한 사찰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독방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이 공간에서 고현정의 모미는 "이제 가진 것이 없다, 건드리지 마라"는 태도를 무표정 속에 담아냅니다. 감독은 고현정의 첫 등장 장면에서 별도 디렉팅이 필요 없었다고 회고했는데, 제가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세트의 색채 설계가 배우의 내면과 맞물리면서 공간 자체가 연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작 웹툰과의 차이를 따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작에서 모미와 천애는 끝까지 대립 관계이며 모미가 천애를 살해하는 결말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이 연대하고 함께 탈출을 시도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 원작의 주오남은 일본어 대사가 거의 없었으나, 드라마에서는 안재홍의 제안으로 일본어 비중이 대폭 늘었습니다.
  • 원작에서 모미는 자수가 아닌 도주 중 검거되지만, 드라마에서는 천애의 죽음 이후 스스로 자수하는 방향으로 변경됐습니다.

한국 다크 스릴러 장르로서의 위치

마스크걸을 일본의 '인간실격'이나 미국의 'You'와 비교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도 그 비교가 완전히 틀리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외모 콤플렉스와 온라인 정체성이라는 소재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외모 지상주의 문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성형수술 비율과 외모 관련 자존감 문제가 OECD 국가 중 상위권에 해당합니다(출처: OECD Better Life Index).

이 작품이 가진 장르적 의미도 주목할 만합니다. OTT 플랫폼에서 한국 콘텐츠의 다크 스릴러 장르는 '오징어 게임'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마스크걸은 그 흐름 안에서 외모 콤플렉스라는 사회적 의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장르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에 관한 분석을 보면, 장르의 보편성과 현지 사회 의제의 결합이 해외 시청자의 공감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꼽힙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 출신인 김용훈 감독의 연출 방식이 시리즈 호흡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회차별 밀도가 영화적 완결성을 지향하다 보니, 장편 시리즈 특유의 점층적 서사 전개보다 신(scene) 단위의 강렬함이 우선시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지점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동시에 작용합니다.

마스크걸이 시즌 2로 이어질지, 아니면 영화로 확장될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즌 2보다 영화 포맷이 더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보입니다. 영화라면 감독이 선호하는 미장센 중심의 연출 방식이 시리즈 특유의 호흡 문제 없이 훨씬 더 잘 발휘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드라마와 영화라는 두 포맷 사이에서 이 세계관이 어떻게 표현 방식을 달리할지가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마스크걸을 보지 않으셨다면, 메이킹 영상은 완주 이후에 보시길 권합니다. 순서가 꽤 중요한 작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E9URV6pKRc